小岸壯二, 1898年(明治三十一)-1924年(大正十三)
大分縣 中津에서 태어나다. 1908年(明治四十一), 十세에 本因坊秀哉에 入門하다. 1915年(大正四), 十七세에 入段. 秀哉는 小岸이 才能이 있어 바로 入段을 許可하지 않았다 한다. 兄弟子인 野澤竹朝는 "未來에 가장 무서워할 사람은 小岸 一人일 것이다" 라고 初段時代의 小岸을 評했다.
入段以後는 隔年으로 五段까지 昇段했다.
時事新報에서는 大正九年一月末까지 三十二人을 물리쳤고,
万朝報에서는 八連勝一回, 六連勝四回를 포함하여 四十二勝九敗一無를 했다.
1921年(大正十三)에는 前年에 結成한 坊社兩派의 젊은 棋士들의 硏究會인 六華會에 會友로 迎入되어, 瀨越憲作, 井上孝平과 함께 同會의 發展에 盡力했다.
1924年(大正十三) 一月六日, 장티브스로 重態에 빠지다.
秀哉는 小岸의 再起不能을 알고 이 날로 小岸을 六段으로 昇段시킨다.
小岸은 다음날 一月七日 二十六세의 짧은 生涯를 마감한다.
秀哉의 後繼者로 期待되든 小岸의 죽음으로 本因坊戰이 創設되었다고 한다.
東京 巢鴨에 있는 本妙寺 本因坊當代 墓地에 安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