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宮米藏, 1769年(明和六)-1835年(天保六)
淡路에서 태어나다. 淡路 津名町에 現存하는 千規庵의 寺男으로 있으면서 혼자서 獨學으로 바둑을 배웠다. 그後 諸國을 遊曆하면서, 阿波의 米藏, 地元에서는 神畑의 米藏 등으로 賭碁師로 유명해지고 米藏의 이름이 全國에 알려졌다. 三千兩의 巨金을 모두 주색, 도박에 탕진했다고 한다. 三千兩勝 皆遣果 酒色遊女賭博等...
1820年(文政三), 米藏五十一세에 藩主 蜂須賀阿波守에 上府하여 本因坊家에 對局을 청했다. 米藏의 이름이 높아 當時 六段이면서도 實力이 名人級이었던 丈和가 대국에 응한다. 米藏 二子局으로 十一番가 두어지다. 米藏의 四勝六敗一無로 米藏에게 三段이 許可되었다. 文政七年에는 米藏 四段이 되다.
關山仙太夫는 말하기를...
米藏은 手를 보는 것은 매우 優秀하나 일반의 戰法을 구사하지 않고 我流에 집착하는 强五段의 珍物이다...라고 評하고 있다. 丈和가 지은 [國技觀光]에 全局이 採錄되어있는데, 丈和는 米藏의 바둑을 力碁라고 높이 評價하고 있다. 後年, 一生軒無案이라 號하고 大阪에서 죽었다. 墓所는 道頓堀의 法善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