澁川春海(二世算哲,保井算哲), 1639年(寬永十六)-1715年(寶永五)
京都에서 태어나다. 一世安井算哲이 四十九세 때의 實子. 幼名은 父와 같은 六藏, 後에는 助左衛門. 諱를 都翁이라 한다. 幕府의 天文方이 되고나서는 이름을 澁川春海로 바꿨다. 二世算哲로도 불리우나, 算哲은 이미 一世算哲이 쓰고 있으므로, 碁方의 安井家에서는 算知에게 保井姓을 내려 保井算哲로 쓰도록 했다.
어려서부터 學芸百般에 才能을 發揮하여, 碁는 算知에게 배우고, 江戶에서는 池田昌意에게 數學과 曆法, 京都에서는 山崎闇齊에게 神道, 岡野井玄貞에게 天文學과 曆法, 土御門泰福에게서 曆法과 陰陽道를 배웠다.
二十一세 頃에는 學者로서 諸國에 강의를 다니고, 德川光圈, 保科正之, 柳澤吉保 등의 寵遇를 받는다. 이무렵은 아직 安井家도 京都에 本據를 두고, 碁方은 秋冬의 出仕期間에만 江戶의 寂光寺에서 滯在하고 있었다.
1659年(万治二), 算知의 力이 비축되었던 것일까, 十七세의 少年이 御城碁에 初出仕하여, 本因坊道悅에게 黑番으로 四目勝을 한다. 그 後 二十五年간을 碁士生活을 하는데 靈元天皇가 土御門 泰福에 改曆을 명한다.
1684年(貞享元), 日本人最初의 策曆인 貞享元이 算哲의 手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이 算哲의 運命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貞享元의 採用으로 算哲은 碁方에서 天文方으로 옮겨가고, 新規召抱로 二百五十石의 祿을 받는다. 여기서 이름을 澁川春海라 개명한다. 이로써, 澁川家는 天文方으로 代代를 잇고, 碁方은 安井家가 算知의 系統에 榮華를 주었다. 道策과의 對局에서 春海는 太極(北極星)의 發想에서 나온 必勝의 確信으로 初手를 天元에 두었으나,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九目敗의 큰 차이로 지게 되자, 春海는 두번다시 初手를 天元에 두지않았고, 결국은 "初手天元"을 체념한다. 同 時期에,
琉球(Okinawa)에서 온 南里與兵衛(山崎源左衛門, 山崎無三坊) 碁士들도 道策을 相對로 第一着을 天元에 둔 바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