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십결 (圍棋十訣) Ten Commandments in Baduk

1. 부득탐승(不得貪勝) Greed for the win takes the win away.

부득탐승이란 너무 이기려고만 들지 말라는 충고다.
바둑은 승부를 다투는 게임이므로 필승의 신념을 갖고 자신있게 두어가야 한다.
필승의 신념과 이기려고 하는 마음은 언뜻 같은 말 같지만 실은 서로가 다르다.
필승의 신념이 있으면 과감하게 나가야 할 때 과감할 수 있고
모험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모험도 불사할 수가 있다.
그러나 꼭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져서는 안 된다, 지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 자세인데
이렇게 처음부터 심리적 부담을 가져서는 바둑을 활달하게 둘 수가 없다.
필승의 신념이 있고 자신감이 있으면 盤前無心으로 조바심도 두려움도 없다.
그러나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게 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부득탐승을 쉽게 말하면 어깨에 힘을 빼고 바둑을 두라는 말이다.
라이벌 친구와 치수고치기 할 때 열을 받아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되면
평소에는 호선이던 바둑이 금새 2점, 3점으로 올라가지 않던가?
위기십결의 원작자가 바둑을 잘 두기 위한 10가지 비결을 궁리하면서
바둑의 기술은 제쳐두고 不得貪勝이라는 마음의 자세를 제일 위에 둔 것은
아마도 이것을 실천하기가 가장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2. 입계의완(入界誼緩) Play away from thickness.

경계를 넘어 들어갈 때는 천천히 살금살금 다가가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예컨대 포석이 끝나면 상대의 진영과 내 진영의 경계가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누구나 내 집보다는 상대의 집이 커 보이는 법이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내 집만 일방적으로 크게 키우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기 마련인데
입계의완은 바로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入界誼緩이 지향하는 바는 정확한 형세판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불리한지 유리한지를 알아야 일전을 불사할 것인지, 평화를 택할 것인지,
깊이 뛰어들 것인지, 가볍게 삭감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을게 아닌가?
다음은 세계 초일류 프로九段 입신(入神)들의 말이다.
- 바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형세판단이다.
- 형세판단은 감각, 수읽기, 전투력 등 각자가 지닌 기량의 총체이다.
위기십결을 만들면서 제일 처음에 不得貪勝이라는 마음의 자세를 말하고
그 다음에 入界誼緩이라는 말로서 바둑의 기술적 부분을 강조한 것은
실로 용의주도한 배려였다고 아니할 수 없다.

3. 공피고아(攻彼顧我) Make a fist before striking.

상대방을 공격하고자 할 때는 먼저 나 자신을 돌아 보라.
내게 약점은 없는지, 반격 당할 소지는 없는지 살핀 후에 공격하라는 말이다.
살고난 후에 상대를 잡으라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가 이를 뜻한다.

4. 기자쟁선(棄子爭先) Discard stones, take initiative.

하수는 돌을 아끼고 상수는 돌을 버린다는 속담이 있다.
초심자일수록 내 돌은 하나도 죽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흔히 본다.
고수들은 초심자가 보기에는 대마인데도 쉽게 버리곤 대신 선수를 취한다.
돌 몇 점을 희생시키더라도 선수(先手)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사석작전 즉 버림돌작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한다.
기자쟁선은 또 요석과 폐석을 잘 구분하라는 가르침을 포함하고도 있다.
용무를 마친 돌은 아무리 커도 가치가 작은 것이고 비록 한 점이라 하더라도
상대말를 끊고 있는 요석이나 근거에 관계된 돌은 가치가 큰 것이다.
버려라. 그러면 이긴다.
섭위평九段이 승부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말이다.
바둑에서 선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덤을 6집반이나 내야 하는데도 프로기사들이 흑을 들고 싶어하는 것은
선수의 가치를 잘 말해 주는 일이라 하겠다.

5. 사소취대(捨小就大) Don't trade a dollar for a penny.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곳으로 나아가라.
기자쟁선과 일맥상통하는 말로서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승부에 몰두하게 되면 냉정을 잃게 되고 판단이 흐려지기 일쑤다.
작지만 눈앞에 이익이 있는데 멀리 있는 큰 이익이 말처럼 잘 보이겠는가?
냉정하게 멀리 내다보고 눈앞의 이익을 먼저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왕왕 경험하는 일이다.

6. 봉위수기(逢危須棄) When in danger, abandon.

위기에 처할 경우에는 모름지기 버리라는 것이다.
곤마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건 꿈같은 이야기고
바둑을 두다 보면 피차 곤마가 하나 둘 혹은 그 이상 생기기 마련이다.
곤마가 생겼을 때는 먼저 그 곤마의 관상을 잘 보아야 한다.
살아가는 길이 있다면 살려야 하지만 쉽게 살릴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또 살더라도 여기저기서 대가를 크게 지불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면
미련을 두지 말고 과감히 버리는 것이 좋은 경우가 많다.
가망없는 곤마를 끌고나가면 잡히면 대패하고 살더라도 결국은 지게 된다.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이불여사(生而不如死)가 이 경우의 말이다.
곤마는 덩치가 커지기 전에 버릴 것인지 살릴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마의 생사에 승부가 걸려 있다면 죽든 살든 헤쳐나가 봐야겠지만
아뭏든 결단의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7. 신물경속(愼勿輕速) Make thick shape, avoid hasty moves.

바둑을 경솔히 빨리 두지말고 한수 한수 신중히 생각해서 두라는 말이다.
부득탐승과 함께 바둑의 정신적인 자세를 강조한 가르침이다.
위기십결의 원작자가 십결을 하나 둘 만들어 가다가
바둑두는 마음가짐을 강조하는데 不得貪勝 만으론 미흡하다고 본 모양이다.
부득탐승은 너무 어려운 내용이니까 이번에는 좀 쉬운 말로 풀이했다.
감각을 훈련하는데는 속기로 많은 판을 두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실제 대국에서는 빨리 두어서 좋을 것이 별로 없다.
빨리 두다 보면 착각이나 실수가 자주 튀어나오기 마련이니까.
어떤 아마추어분는 10분이면 한 판을 둔다고 자랑삼아 얘기를 하는데...
빨리 두어서 이긴다면 또 모르지만 빨리만 두고 맨날 지기만 한다면
그것처럼 무의미한 일, 우스운 노릇이 어디 있겠는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속기의 천재 서능욱九段은 속기의 악습을 고치고자 염주를 들고 다니지 않았던가?

8. 동수상응(動須相應) A move must respond to the opponent's.

상대가 움직이면 나도 움직이고 상대가 멈추면 같이 멈추는 호흡이 중요하다.
상대가 집을 지으면 나도 집을 짓고 상대가 지키면 나도 지키는 식이다.
그러다 기회가 오면 번개같이 상대를 쳐서 우위를 확보하도록 한다.
행마(行馬)를 할 때는 모름지기 이쪽 저쪽이 서로 연관되게 움직여서
서로 호응(呼應)을 하면서 국세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도록 운석(運石)한다.
한 번 놓여진 바둑돌의 위치는 바뀌지 않지만 그 역할은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그래서 바둑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고들 하는 것이다.
이 말의 깊은 뜻을 잘 음미(吟味)해 보시기 바란다.
이 말의 깊은 뜻을 이해하신다면 어느덧 고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9. 피강자보(彼强自保) Don't throw an egg at a wall.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내 편의 돌을 잘 보살피라는 말이다.
형세가 조금 불리하다고 해서 상대의 세력권에 마구 뛰어 든다거나
내 돌에 약점이 많은데도 싸움을 벌리는 것은 패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불리할수록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꾹 참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찬스는 찾아오는 법이다.
바둑이 불리해진 것은 내가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한다.
시쳇말로 손님 실수 기다린다는 것하고는 다르다.
되지도 않는 수로 상대를 교란하는 수는 손님 실수를 기다리는 거지만
불리하더라도 침착하게 정수로 두어가면서 기회를 보는 것은 참는 것이다.
그리고 바둑에서는 대개 참는 자가 이기게 되어 있다. 이창호(李昌鎬)九段을 보시라.

10. 세고취화(勢孤取和) Live first when isolated.

상대편 세력 속에서 고립이 되면 빨리 안정하는 길을 찾으라는 뜻이다.
일단 살고 나서야 후일을 도모하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에잇, 사나이 대장부가 목숨을 구걸할 수 있나
치사하게 사느니 싸우다 죽는 것이 낫지! 하면서
무조건 싸우려고 하시는 아마추어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것은 만용일 따름이다.
삼국지(三國誌)를 보면 천하를 도모하는 수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하는데
그런 영웅호걸들도 때가 아니라고 느끼면 남의 가랑이 밑도 서슴없이 기었다.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순간의 불편이나 굴욕은 참고 넘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다.



圍棋十訣이란 바둑을 잘 두기위한 10가지 비결로 바둑의 십계명이라 할 수 있다.
위기십결의 작자는 지금까지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자 당 현종의 바둑 상대역인
기대소(棋待詔) 벼슬을 지냈던 바둑고수 왕적신(王積薪)이라는 설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1992년 여름 대만의 중국교육성 바둑편찬위원인 주명원(朱銘源)씨가
위기십결은 王積薪의 작품이 아니라 송나라 때 사람 유중보(劉仲甫)의 작품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제기함에 따라 현재 위기십결의 원작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는
韓中日 바둑사 연구가들의 숙제로 남아 있다.